국민적 요구이자 국민의 목소리란 말을 들을때 마다 난 생각한다.사실 다수의 국민도 아닌 소수의 목소리 일뿐만, 아니라 국민전체가 인정한 대표자들의 목소리도 아니다.
그렇다. 그저 소수이다.
하루하루 관심없이 지나치는 당신들 눈에는 수많은 방관자, 중립론자들 사이에서 그저 소수일 것이다. 아니 소수이다.
하지만 특정한 집단이나 특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모여진 조직이 아니다. 변질된 목적이나 생각 단순한 관심부족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분노로 모여진 것도 아니다. 너무도 다른 환경과 다른 가정, 나이, 취향, 성격을 가지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모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진 단순한 목표는 마치 합의라도 한것 처럼 일치했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스스로의 판단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너무도 과격했던 사람과 너무도 이성적이었던 사람마저 결국엔 같은 흥분과 분노, 슬픔으로 계속해서 약물중독보다 더 간절한 바람으로 움직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르고 놀랍도록 일치했다.
'우리'는 그렇게 '합리적'인 생각으로 행동하였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이다.
그것이 '우리'가 거리로 뛰어 나가는 공통적인 '이유'이다.
불만에서 시작하여 바람으로 넘어간, 바람에서 다시 분노와 슬픔으로 넘어간 그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이유'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우리의 존재이유를 위해서 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 속에서 얻는 행복, 그것을 얻을 당연한 권리 그것들을 위해서 이다.
모두를 위한 것, 그것은 모두가 똑같은 행복을 가지란 것이 아닌 각자가 느끼는 다른 행복의 크기를 알아서 갖게 하기 위한 당연한 권리를 나누자는 것이다.
자본에 의해, 권력에 의해 그 크기가 같아서져서 소수만 누리게 해선 안될 것이다.
허영에 의해, 사치,망상에 의해 그 목표가 하나가 되어서 불만이 너무 커지기만 해서도 안될 것이다.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세상이 아닌 다양한 크기의 바람과 행복을 위해 모두에게 공평하게 그 권리는 나누자는 생각해서 시작한 '걸음'이었다.
비록 '그것'이 당장의 '우리'것이 될수 없더라도 나같은 고통와 슬픔을 우리의 동생와 아이들에게 나눠주지 않게 하고 싶다는 너무도 인간적인 마음속에서 신념을 굳히고 또 다시 나서는 것이다.
무력에 피해자가 되더라도 '그것'으로 큰 고통을 얻고 혹은 자신마저 잔혹한 괴물처럼 전쟁과도 같은 치열함으로 싸우더라도 '그것'을 이뤄낼수 있다면 이것이 마지막 싸움이 되어 다신 싸우지 않게 될 것을 믿기에 결연하게 나서는 것이다.
살기위해 싸운다지만 우리는 삶의 영속을 위해 나선다.
이것이 '우리'가 당신도 함께하길 원하는 권하는 이유이다.
이것이 '우리'가 당신도 참여해야함을 강요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20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겪지도 보지도 못했음에도 지금에 다시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어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그 '증거'이다.
2009년 6월 10일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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