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꼭 존재한다.
뭔가 깊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원하고 기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자주 한다. 자신이 믿는 가치에 더 보편적이고 큰 의미가 부여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고자 하는 것에 집착하려 드는 듯한 그런 의식은 아마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인 심리인거 같다.
이미 벌어진 (있어던 절대 안되었던) 비극적 사회사건들에서 일어난 수많은 음모론들 또한 단순하게 현실을 직시하기 보단 그저 자신들이 맞닥뜨린 실제보다 더 크고 드라마틱한 비극이 숨겨졌기에 발생된 사건이라고 스스로 위안삼아 분노를 터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과장된 일들이라 생각된다. (물론 최근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선 공권력이 의심의 불에 휘발유를 부어주는 행동을 서슴치 않아 진실이 자체가 없어 보이기 까지 한 사건들도 있다.)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신작 '마더'는 사실 기획단계에서 봉준호가 직접 김혜자를 찾아가 섭외하면서 어머니 영화를 찍을려고 한다 는 짧은 정보에 봉준호가 뭘 잘못먹었는가 하는 상당한 실망와 의구심이 들게 한 영화이다. 김혜자라는 배우가 주는 투박한 이미지와 어머니 영화라는 70년대 보수적 계몽사상주의 영화같은 느낌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봉준호 특유의 조소와 시니컬한 느낌의 상상력을 연결시킬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봉을 앞두고 소개된 '마더'라는 제목에서 결국엔 이 인간이 사고를 쳤구나 했던 좌절감도 잠시뿐 살인누명을 쓴 지적장애 아들을 위해 진범을 찾아나선다는 이야기라는 설명에 그자체만으로 반전과도 같은 번뜩임을 얻었다. 아 역시 봉준호구나...
이렇게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마더에 대한 간단한 평가는 이렇다.
대중적 클리쉐와 사람들의 긴장감을 활성화 시키는 시퀀스들로 영화의 집중을 높이는 봉준호 영화의 특징은 이번작품에서도 소소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속의 서스펜스적인 요소들은 사실 엄마라는 존재의 극단적 심리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들일 뿐이다.
가령 약재를 썰면서 손가락이 잘릴듯이 아들(혹은 아들과 관련된) 사람들과 사건에 집중하는 장면들은 어떠한 극단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암시이기 보단 단지 그만큼 아들과 관련된 일이 집착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에 대한 단상을 표현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을 뿐이다.
이영화는 단지 봉준호 감독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속에서 끝도없이 폭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란 말처럼 그저 아들과 아들에 대한 트라우마로 끝도없이 집착하는 한국사회 어머니들의 표상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다.
극단적인 고통속에서 발생되었던 이기심과 거기서 파생된 커다란 죄책감에 대한 트라우마로 아들에 집착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과거속 자신의 핸디캡과 사회적 컴플렉스들에 갇혀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집착하며 이기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사회 어머니들에 대한 작은 비아냥과 큰 연민이 담겨진 모습과도 같다. 이 영화는 그러한 연민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것이다.

봉준호라는 감독은 애초부터 사회적이며 정치적의식을 가지고 있던 감독이었다.
개인적 소문에 근거하면 이미 연대 운동권 출신으로 영화인을 꿈꾸면서도 의식화된 학생투쟁을 통해 사회적 개혁을 몸으로 익혔던 세대였고, 또한 현재는 민주노동당 당원에서 분당된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활동중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의 영화들 저 유명했던 단편영화 지리멸렬부터 봉준호란 감독을 스타로 만든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만 보더라도 그가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얼마나 잘 인식하고 표현해 내는지 이미 잘 알 것 이다.
개인적으로 봉준호라는 감독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도 한국사회의 지독한 병리적 현상에 대해 마치 과거에 '그들'만의 이야기로만 치부되었던 것들을 일상적인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고 노골적으로 표현해 내어 관객들로 하여금 부담없이, 하지만 그 사실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수 있게 만들어 내는 그만의 표현방식이 너무도 훌륭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그런 반드시 공론화 되어야 할 이야기들을 조소와 풍자로 대중에게 퍼트리는 봉준호는 정말 보물과도 같은 영화감독일 것 이다.
그것은 봉준호란 감독은 영화를 있는 그대로 해학적인 풍자의 도구로 삼으면서 표현하는 것이 복잡한 암시적요소와 반전적 구조로만 이끌어 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사실은 그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기사에서도 '단지 영화속에 몰입요소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뿐 영화속에 암시적 장치는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곳에서도 알수 있다. 많은 이들은 그러한 암시적 요소에 집착하여 그가 마치 JJ 에이브람스 처럼 희대의 낚시꾼이라도 되는듯 집착하며 해체하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착각이요, 과대망상일 뿐이다.
우리는 단지 그의 영화속에서 그가 어떤 사회적 요소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가를 그의 재치있는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그후엔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뿐이다.
봉준호는 단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뿐, 그 어느것도 반전과 암시로써 우리와 퍼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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