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2일 금요일

도서출판 돌베개와 상식적인 신뢰

돌베개라는 출판사 아십니까?

유시민님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최근 대표작으로 해서 전태일 평전 과 같은 노동, 사회과학, 경제서적등을 전문으로 출판하던 곳이죠.

오늘 이곳 관견해서 완전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후불제 민주주의 뒤늦게 북 페스티발에서 작년 가을쯤에 가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읽지 못하다가 요새 출퇴근을 통해 읽는데 후반부 쯤에 책 가운데 부분이 꽤 크게 구멍이 나게 뚫려 있더군요. 지면부분까지 잡아먹어서는 그냥 넘어가긴 너무 그래서 교환 받을려는데 서점 구입도 아니었고 구입한지도 오래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서 일단 그냥 읽으면서 지내고 있는데 때마침 생각이 나서 회사에서 뒤 늦은 시간에 혹시나 해서 출판사로 전화를 했습니다.

<대략 이렇게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냥 넘어가긴 걸리는게 있는 편이죠>

저녁8시 늦은 시간이라 안 받으실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걸었는데 갑자기 받아 주시더군요. 아 순간 이분들의 야근에 끼어 들었는데도 응대해 주셔서 감사와 함께 무례함에 일단 양해를 당황하면서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책의 불량부분에 대해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들으시고는 너무도 흔쾌히 교환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도 너무 당황스럽더군요. 구입한지 오래되어 서점으로 가서 교환받기도 뭐하니 직접 배송해 주신다며 주소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자신들이 이용하시는 우체국 택배가 맞교환이 될지 모르겠는데 안되면 제게 보내는 책에 운송비를 넣어드릴테니 따로 보내달라고 하십니다. 허...


구입여부 확인이나 교환원칙, 심지어는 도서의 실제 구입, 보유 여부도 묻지 않으시고 불량에 대해 책임을 지시기 위해 쉽고 간편하게 교환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전화 받으신 분께서 내일 휴가인데 다른분께 넘겨드리기도 에매해서 자신이 직접 책임지고 해드리고싶다 하여 목요일에 직접 배송 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후불제 민주주의 초판에 부록이었던 CD를 받지 않았다면 같이 보내주겠다고 CD 보유 여부를 물으시더군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참 기분이 너무 묘하고 신기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내는 이 세상속의 이 사회에선 항상 경제적 합리성을 갖춘 운영방식으로 상품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그 권리를 악용하거나 혹은 거짓으로 꾸며내어 자신에게 이익을 내려는 개인들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기업의 자기중심적 자세에 입각한 합리성을 서로에게 요구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경제적 합리라는 허울에 익숙해져서 서로를 신뢰하지 않고 진행되는 행동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당연시 하게 되었지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세상이, 인류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신뢰의 방식이 너무도 새로운 듯 신선하고 고맙게 느껴진 게 이상한 것만 같은 기분이 다 듭니다. 그 동안 제 자신에 인류에 대해 신뢰를 너무 많이 무너 뜨려서 그런 것 일까요?

우리가 살고 앞으로 살아 갈 이 세상이 좀 이렇게 신뢰의 상식이 보편적인 세상이 되어야 진정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별거 아닌 이 사소한 불량도서 교환 하나를 통해서 많은 생각과 다양한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2009년 8월 7일 금요일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 : 가난한 청춘에게 사랑은 무슨 사랑,불완전 노동과 불투명한 미래에 지쳐 ‘러브러브’할 힘마저 잃었네

‘88만원 세대’의 사랑은 사치다.

어느새 한국은 불임의 사회가 돼버린 것 아닐까? 일찍이 경쟁에 내몰리고 숨 가쁘게 뛰어다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아봐야 꼬박꼬박 월급 주는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고졸이든 대졸이든 아르바이트(알바)를 전전하며 입사원서를 내다보면 시간도 부족하고…. 이렇게 불안정한 노동과 불투명한 미래에 시달리는 88만원 세대의 사랑은 안녕할까?

오늘의 청춘은 바쁘다. 사랑에 필요한 시간과 여유와 열정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은 불안정한 사랑을 낳았다. 한 달을 꼬박 일해도 기껏 ‘88만원’을 손에 쥐는 청춘의 시대. ‘가난한 사랑 노래’는 옛 노래가 아니다. 신경림 시인이 1988년 발표한 ‘가난한 사랑 노래’는 강산이 두 번 변한 오늘에 오히려 심금을 울린다.

 

»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3만원 더 나온 전화요금, “누나, 동생으로 남자”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던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도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을 버려야 했다. 스물여섯의 팔팔한 청춘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8만원,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에 찍한 금액을 보는 순간 그는 연애를 ‘끊기로’ 결심했다. 3만원이 아까웠다. 통화는 비싸서 안 하고 문자도 “세 번이 오면 한 번만” 보내며 자제를 했건만, 원래 5만원 나오던 요금이 3만원 더 나왔다. 차라리 그 돈으로 등록금 대출을 갚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알바를 하며 만났던 연하의 청년과 연애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기엔 그의 어깨에 얹힌 짐이 컸다. 2014년, 대학 등록금 대출 상환이 끝나는 날은 아득히 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알바를 뛰어도 손에 쥐는 돈은 겨우 100만원 안팎, 한 달 60만원 등록금 대출을 갚으면 한 푼이 아쉽다. 한지혜씨는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누나, 동생으로 남자.” 모처럼 찾아온 사랑의 기회는 그렇게 끝났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입술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일찍이 스무 살의 지혜씨는 사랑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남자들이 네댓은 됐지만, 그들에게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알바 인생은 시작됐다. 400만원 가까운 등록금 대출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한 달에 20만~30만원씩 갚아야 했다. 그래도 빚은 남았다. “인생을 담보로 대학을 다녔다”는 지혜씨의 표정이 쓸쓸했다. 게다가 2008년 졸업할 무렵엔 버스 운전을 하던 어머니가 사고를 내 벌금을 내게 됐다. 어머니는 몸져누웠고, 쌍둥이 남동생은 벌이가 없었다. 등록금 상환에 어머니 벌금까지, 고스란히 지혜씨가 감당할 부채가 됐다. 새벽에 나가서 오후에 끝나는 알바에 몸이 무거워 누구를 만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없는 청춘의 세월은 빨랐다. ‘서른 살 이전에 연애 한번 해볼까?’ 그렇게 연애는 ‘결심’이 필요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 되었다.

 

 

노는 내가 일하는 나한테 미안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 남자는 여자가 졸업 선물로 준비한 만년필을 꺼내, 종이컵 위에 성탄절에 드는 하루 데이트 비용을 적어보았다. 저녁 식사 약 2만원, 영화 관람료 1만4천원, 선물 2만원, 찻값 1만원, 모텔비 4만원… 얼추 10만원이 넘었다. …돈을 꾸어볼까 생각해봤지만, 그럴 만한 곳에서는 이미 빚을 진 상태였다. 남자는 여자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었다. 저녁도 먹고, 선물도 주고, 와인이나 칵테일도 마시고, 평소 가던 곳보다 조금쯤 더 비싼 모텔에서 근사한 섹스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남들처럼. 남자는 돈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남자는 거짓말을 했다. ‘어머님이 편찮으시다.’ 그것이 자신과 여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이렇게 20대 소설가가 그린 요즘 20대의 연애는 쓸쓸하다. 김애란이 2007년 펴낸 소설집 <침이 고인다>에 나오는 단편 ‘성탄특선’엔 지방에서 올라와 알바를 하는 여자와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중인 남자가 성탄절에 겪는 얘기가 담겼다. 이렇게 낭만적인 성탄절에도 모텔방 하나에 세들 여유가 없는 현실은 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 시간은 없고 주머니는 비었고, 20대가 열정을 가질 여유를 세상이 허하지 않는다. 서울 남산 N서울타워 전망대에서 포옹하는 연인.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조영수(29·가명)씨도 여자친구와 모텔에 갈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 애인이 좋아하는 모텔은 방값이 4만원. 부모님의 식당일을 도와서 한 달에 60만원을 받는 그에겐 버거운 액수다. 그러나 차마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가지 말자고 말하진 못한다. 그는 연상의 애인이 밥값과 술값을 내면 모텔비는 자신이 내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다. 패밀리레스토랑은 “여친이 가자고 하는 경우만 간다”. 여친이 가자고 하는 경우엔 자신이 내겠단 사인이다. 영화일을 하려고 대학을 중퇴한 조씨는 오늘도 다짐한다. ‘그래, 서른까지만 나에게 (영화일) 기회를 주자.’ 서른이 넘은 애인은 혼기가 꽉 찼지만 차마 결혼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이렇게 오늘의 청춘에게 내일은 없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정진아(25)씨는 자꾸만 데이트 시간이 ‘800원’으로 계산됐다. 오래된 알바는 오래된 습관을 키웠다. 그는 인터넷으로 중·고생 학습 상담을 해주는 알바를 대학 시절 내내 했는데, 10~15분에 상담 하나를 끝내면 800원을 받았다. 그러니 애인과 영화 한 편을 봐도 ‘영화요금 8천원이면 3시간 알바인데…’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는 “노는 내가 일하는 나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다닌 그도 알바로 점철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동생과 둘이 대학에 다니다 보니 한번에 800만원씩 나오는 등록금은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그의 집에도 큰 부담이었다. 그는 “언제나 오전엔 수업, 오후엔 알바를 했다”고 돌이켰다. 휴학을 하면 더욱 ‘빡세게’ 살았다. “학교에서 복사하고 청소하고 도서관 잡무로 8시간 일했다. 그 사이사이 눈치를 보면서 채점하는 알바를 하고, 한 주에 두 번씩 점심시간에 나가서 학생들 출석 점검을 하고, 주말 알바를 따로 뛰고.” 그렇게 시간당 4천원, 한 달에 150만원을 벌었다. 두어 번 연애를 했지만 “만나기 전에 뭔가 계산부터 하거나 내가 이걸 할 여유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결국 연애는 길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제발 숨 좀 쉬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취업 준비를 위해 이별을 고하다

 

 

88만원 세대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길어야 그 유효 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 노동이 이처럼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일시적이고 잠정적이게 되었는데, 자기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그런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하겠는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노동의 유연화는 언제나 일시적이고 잠정적이기에, 연애와 사랑, 가족처럼 한정적 시공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하는 인간 사이의 친밀성과 유대감, 연대의 틀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노동의 형식이다.

 

엄기호씨가 쓴 신자유주의 비판서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의 일부다. 신자유주의의 유연한 노동은 잦은 이동을 요구한다. 더구나 서울에 자원이 집중된 사회에서 편입과 취업을 통해 서울로 가려는 욕망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대구의 대학에 다니는 박지현(22·가명)씨는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 외식 관련 학과에 다니는 그는 “대구엔 취업할 호텔도 별로 없을뿐더러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서울의 대학으로 편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당분간 연애는 유예할 각오다. “편입할 학교에서 이전 학교의 학점도 본다니 학사 관리도 해야 하고, 편입 준비도 하니까 알바를 하지 않아도 바쁘다.” 사귀던 애인과는 지난해 여름에 헤어졌다. 그는 “3학년이 되면 연애도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연애가 더 이상 낭만이 될 수 없는 3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에 올라온 그는 편입학원을 다니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중이다.

 

 

» 7월30일 ‘함께 일하는 재단’과 20대 단체인 ‘희망청’이 서울 합정동에서 연 ‘살롱 드 일 論’에서 김어준씨가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이 행사는 20대의 일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연속 강좌다.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편입과 취업의 성공이 ‘이별’로 이어지는 지방의 사랑은 철새의 사랑이 됐다. 엄기호씨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에서 지방대 출신 형석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형석은 지방대생의 사랑은 슬픈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대에서는 어느 한쪽이든 서울로 더 일찍 떠날수록 경쟁에서 성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떠남이 미리 전제되고 축하해야 할 일이 된 곳에 머무르는 두 마리 철새의 사랑은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서울과 지방이 아니라도 공간의 분리는 이별을 부른다. 같은 지역에 살아도 취업을 위해선 자신을 유폐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취업난 속에서 오늘의 공시(공무원 시험)는 어제의 고시가 되었다. 마치 고시 공부를 하듯이 자기만의 골방에 틀어박혀 공부하지 않으면 합격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방에 ‘박히면서’ 이별을 고하는 커플이 적잖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이혜영(26·가명)씨는 의학전문대학원을 가려는 남자친구를 만난다. 이씨는 “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주에 두 번만 보기로 정했다”며 “경력에 방해가 된다면 운명 같은 사랑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편이다. 시간이 드는 연애 대신에 감정적 소모가 적은 ‘섹스 파트너’를 두는 경우도 있다. 엄씨는 “이제 사랑은 취업의 적”이라며 “윗세대는 세상과 교류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았지만, 88만원 세대는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고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합리적 선택, 초식남-철벽녀

 

대학을 졸업해서…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할 시기에 백수… 제 주변에도 많은 친구들이 결혼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더 이상 여자와 정신적으로 노동을 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남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어쩌면 초식남이나 건어물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 불황 속에서 연애나 결혼 후 자신과 자신의 다음 세대에게 평균 이상의 삶을 가져다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자괴감에서 온 슬픈 현상이 아닐까요? …결국 우리 사람들도 벌이나 개미처럼 번식은 특별한 몇몇만 하는 사례가 될까 두렵습니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20대 ‘초식남’(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대상에만 몰두하는 남자를 일컫는 말)의 글이다. 이렇게 초식남에서 단물만 빼면 ‘연애 못하는 남자’ ‘결혼 못하는 세대’가 나온다. 김정운(가명)씨는 스물다섯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를 못해봤다. 블로그를 열심히 하는 그는 타로로 점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신화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취미가 다양하고, 신제품에 관심이 많으며, 여성과 잘 어울리나 애인으로 발전하진 않는 면에서 그는 초식남의 외양을 갖췄다. 그러나 그는 “나는 육식이야!” 외친다. 연애 따윈 필요 없어,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나처럼 강요된 초식남과 자발적 초식남은 구분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키가 조금 작은 것만 빼면, 연애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초식남은 마법사로 변신한다. 신준철(25)씨의 블로그엔 ‘마법사 전직 경축!’ 이벤트 사진이 있다. 마법사가 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준철씨와 친구들이 케이크를 주문하고, 티셔츠를 제작했다. ‘Finally, He keeps his pure for 25 years….’ 얼굴에 케이크를 묻힌 친구가 입은 셔츠에 적힌 문구다. ‘마법사’란 25살이 될 때까지 동정을 지킨 남성을 뜻한다. 일본 만화에서 유래한 신조어로 알려졌다. 그런데 친구뿐 아니라 준철씨도 마법사가 될 위기다. 그는 “(25살 생일까지) 아직 3개월이 남았다!”고 외친다. 남들이 보기엔 그도 초식남. 스스로도 “초식남 리스트를 보니 확정적인 초식남”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도 미래를 위해서 연애를 조금은 참았다. 그렇게 노력한 준철씨는 국립연구소에서 일할 미래가 보장됐다. 그는 “주변에선 ‘준철이가 애인만 있으면 엄친아가 될 텐데’ 그런다”며 “엄친아와 마법사는 한 끗 차이”라며 웃었다.

“짝사랑이 죽었다”

 

여성도 이제는 ‘건어물녀’를 넘어서 ‘철벽녀’로 변신한다. 철벽녀란 외모도 괜찮고 학력과 집안도 웬만하나 연애를 못하는 여성을 말한다. 마치 철의 장막을 치듯이 연애를 차단한단 뜻이다. 실제 그들은 연애할 의지도 없지는 않으나 연애에 대한 환상이 있고, 어차피 실패할 연애는 시작도 않는단 생각을 가진 자존심 강한 여성이다. 그래서 실전 연애에 몸을 던질 확률은 매우 낮다.

이렇게 마법사·철벽녀처럼 연애를 못하는 종족이 최근 부쩍 주목을 받는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88만원 세대는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해서 연애는 안 하고, 결혼은 희생으로 생각해 싫어한다”며 “비용 대비 효과만 생각해 감정노동을 피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시간과 돈 같은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아냐 관계냐를 저울질해 나온 합리적 선택이 초식남·철벽녀인 셈이다. 물론 마을과 가족 속에서 관계를 익혔던 경험이 부족한 세대적 특성도 있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로 여왕벌과 왕개미 같은 강자만 결혼하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짝사랑이 사라졌다.”(우석훈)

“오히려 뿅 가는 연애는 안 한다. 그렇게 말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100%인 사랑은 오히려 무섭다고 한다. 살기도 바쁜데 상처까지 받으면 감당하기 힘드니까.”(엄기호)

“쿨이 아니라 굴이다. 신기하게 감정의 촉을 잘라버린다.”(이규호)

이제 관계의 상처는 치명타. 살아남으려면 쿨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상은 자기관리를 못한 당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그러니 쿨해지라고 강권한다. 신자유주의 치하에서 오래된 사랑의 우물은 그렇게 말랐다. <88만원 세대>의 공동저자 우석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는 “선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열정이 절실한데, 자원도 열정도 없으니 짝사랑이 죽었다”고 말한다. 더 이상 ‘사랑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는 아닌 것이다.

미 일리노이대 인류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이규호씨는 “88만원 세대는 가문 혹은 혈통을 이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포스트 가부장제 남성들”이라며 “가족에 대한 갈망, 밥상에 대한 애착이 없는 이들은 감정의 촉을 끊어버리는 기계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쿨하기보다는 각자의 ‘굴’에 갇힌 존재란 것이다. 20대 고학력·중산층·대기업·정규직 남성의 연애를 연구한 그는 “이른바 88만원 세대 중에서 잘나가는 남성은 사랑에 내재된 것들을 잘게 쪼개어 아웃소싱한다”며 “돌봄과 보살핌은 취향과 취미로 대체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주식과 펀드로 대신하고, 성적 욕망은 (유사) 성매매로 해결한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가족은 ‘장기적 부채’라고 말한 20대도 있단다.

이렇게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연애는 부담이고 가족은 짐이다. 우석훈 강사는 “한국전쟁 직후에도 서울의 청춘남녀가 남대문부터 동대문까지 거닐며 연애하는 재건 데이트가 유행했다”며 “지금이 경제적으로 당시보다 더 어렵진 않을 텐데, 무엇이 청춘의 열정마저 메마르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쿨하기보다는 굴에 갇힌 존재

물론 여전히 세상엔 뜨거운 숨결을 나누고 사랑을 키워 가정을 꾸리는 청춘이 많다. 그러나 20대의 열정이 점점 식어가는 신호는 명백하다. 세상이 추운 탓이다. 20대를 착취하는 체제에 지쳐 ‘러브러브’할 힘마저 잃은 청춘이 늘어간다. 그렇게 88만원 세대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사랑할 자유마저 잃었다. 사회는 청춘의 호주머니에 더 많은 돈을 찔러주고,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하는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

더 이상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동감하며 공감까지 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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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5일 수요일

나는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

 

 

설명-2008년 1월 오랜 참모였던 안희정씨가 <담금질>이란 책을 내며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대통령님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참석이 어려워지자, 대신 축하영상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촬영 도중 대통령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이 고생만 시킨 그를 생각하며 밀려오는 회한과 미안함에 끝내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합니다. 안희정씨도 영상을 받아 보고 눈물 지으며, 결국 출판기념식장에서 이를 틀지 않았습니다. 한없이 인간적이셨던 대통령님의 모습을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상영하는 것은 참모로서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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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6일 금요일

Michael Jackson

언젠가 Michael Jackson 이 죽는 순간이 어떻게 올지에 대해 무료한 순간에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는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너무도 위대한 전설이었고 숨겨진 고통과 아픔만큼 누구도 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고 그것을 세계에 전파하며 결코 형식적이지 않은 계몽과 인류애를 보여왔다.

그런 그의 죽음은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성스러움과 특별함을 가져야 하는게 아니가 라는 장난스런 허튼 생각을 하였다. 그가 노환으로 죽는건 너무 신비스럽지 않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전설로 사라져야 했다고 혹은 무대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는 헛되지 않았기에 그의 엔터테인먼트 적인 연출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감성을 남겨준다면 충분히 그리 되어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내 이 허튼 생각이 결국 그를 노환이 아닌 드라마틱한 죽음으로 이루어 졌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마지막이 될 마지막 되어 타오를 위대한 귀환의 공연을 앞두고 사라졌다. 계속 되어 왔던 고통의 고리가 풀리지 않아 결국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의 위대함을 직접보지 못하였다.
그가 한국에 왔었음에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그의 위대함을 아는 한사람으로 그것은 비극이 될 것이다.

50세의 나이에 40년이 넘는 음악경력을 가진 전무후무한 위대한 '아티스트'가 사라졌다.

단순한 딴따라가 아닌 오직 하나뿐인 예술가였고, 그 어떤 지도자 보다 위대한 계몽가 였고, 인본주의자 였다.
스스로는 평범해 지고 싶어했던 특별한 사람이었고, 일반적인 것을 모르지만 남들은 가지지 못한 재능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남들과 너무 다른 인생 만큼 특별했던 그에게 내 삶에서 가장 큰 추모를 바친다.

 


나중에 하늘에서 만나면 꼭 인사할께요.

그땐 더 밝은 모습으로 문워크를 보여주세요.

 

Rest In Peace

Michael 'Joseph' Jackson

1958.08.29 ~ 2009.06.25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Mooncake - Message From Arecibo



'Mooncake' 는 러시아의 5인조 Post Rock 밴드이다.
한국에는 한국계 록 가수 였던 '빅토르 최'의 밴드 키노(Kino) 등의 전설적인 활동과 러시아 대중들의 국민적인 지지로 인해 얇팍하게 나마 알려진 러시아의 대중음악 환경은 유럽의 영향력 아래서 형성된 모습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적 환경의 기반으로 인해 매우 발전적인 대중음악 시장을 형성하고 있진 못하였다. 하지만 소련연방의 붕괴이후 개방화의 경제적 정책으로 가장 높은 성장을 거두는 러시아는 개방 이전부터 이미 '민주주의'적 사회의 다양한 문화를 기반화 하였고 개방과 함께 이제 그 자유로운 표현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지신들의 모습을 천천히 세계시장에 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월병' 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중국의 중추절 명절과자의 영어식 표기인 'Mooncake'라는 이름처럼 나란히 국경선을 마주한 공산주의혁명에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격변까지 함께 나누었던 국가로써의 환경적 공통분모가 동양식 과자의 서구적 표기를 밴드의 이름으로 쓰여지게 하였던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음악은 영국과 유럽을 위시한 정통적인 Shoegaze, Experimental/Post Rock 사운드의 정통성을(매우 놀랍게!) 내포함과 동시에 에메한 유라시아 지역의 감성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또한 Post Rock 계의 선구자와도 같은 'Mogwai'의  향기를 가득 담은 듯한 느낌을 주는데 'Mooncake'의 음악은 실제로 'Mogwai'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애정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영향은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유럽지역의 Post Rock 사운드 자체로 집중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러시아의 고유적인 문화적 색채를 기반으로 한 음악적 특성은 조금은 벗어난 형태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절대적으로 유럽의 색채만을 지향한 것에서 좀 더 진화하여 그들은 '동양식 과자'의 본질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Mogwai 에게서도 유독 강조 되기도 하였던 다양한 관현악 악기들과의 교배를 통해 이루어진 실험주의적 표현성은 2대의 기타와 1개의 베이스, 드럼에 첼로를 공식멤버로 영입한 모습에서 처럼 좀더 구체화 된 진화를 이루었다. 컨트라 베이스에서 진화하여 무게감을 가진 따뜻하고 풍부한 악기로 대표되는 첼로의 소리로 인해 'Mooncake' 는 실험적인 표현의 색깔에 동양적인 감성의 따뜻함과 환경적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함께 올리는 비디오클립은 'Message From Arecibo'의 뮤직비디오 클립이다.
그들의 데뷔앨범 "Lagrange Points" 에 수록 된 곡으로 공식 싱글커버화 된 곡이다. 아레시보(Arecibo)는 미국령의 푸에르토 리코 에 있는 도시로써 세계최대 크기의 전파 망원경을 가진 아레시보 전파 관측소 (The Arecibo Observatory)를 가진 곳으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소설이 원작인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컨택트'에서 본 후 정말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되기도 하였다.)
우주의 전파신호를 분석하는 전파망원경을 가진 아레시보(Arecibo), 행성과 행성간의 중력의 평형을 이루는 5점을 의미하는 라그랑지 포인트(Lagrange Points) 등의 단어를 제목으로 쓰는 걸로 봐선 이들의 음악적 상상력이 우주, 천체물리학등에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추측할수 있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비디오 클립들은 사회적 사건과 이데올로기적 이슈를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Message From Arecibo'의 비디오 클립은 1963년 6월 베트남의 독재화 과정에 대항하여 소신공양(Self-Immolation)을 하였던 틱쾅둑(Thich Quang Duc) 스님의 분신과정을 기록한 보도영상을 자신들의 음악적 이미지에 맞게 보정하여 제작하였다.
베트남의 독재 정권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 상의 다음 자료를 올려 추가한다.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전쟁과 독재정권의 불교 탄압에 반대하여 분신 자살한 베트남 고승 Thich Quan Duc (틱쾅둑)

1945년 일본의 패망 직전에 일본이 세웠던 ‘바오다이정부’를 몰아낸 호치민은 8월 혁명을 성공시켰고, 이에 따라 베트남에는 ‘베트남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Vertnam : DRV)'이 성립된다.
헌데, 세계2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가(20세기 초) 자국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종주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1946년 베트남을 쳐들어간다.

프랑스는 베트남의 절반이라도 차지하기 위해서 프랑스에 망명 있던 구엔 왕조 최후의 왕인 바오다이를 불러들여 1949년 남베트남의 사이공에 ‘프랑스 연방내의 베트남 왕국’을 수립시킨다.
그러나 1954년 5월에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함으로써, 프랑스는 1954년 7월에 제네바 휴전협정을 맺고 8년 전쟁만에 물러나게 된다.

이 對프랑스 전쟁의 결과로 17도선 이북에는 호치민 공산정권이, 남 에는‘고딘디엠 정권’이 각각 수립되었다.
호치민은 우리나라의 大학자 정다산님의 '목민심서'를 즐겨읽던 사회주의자였다.
반면,고딘디엠 정권은 보는 바와 같이 열강이었던 프랑스의 자리를 꿰어찬 '독재정권'이었다.

위 스님의 이름은 틱쾅둑(Thich Quang Duc)이다.
스님은 고딘디엠 정권 당시 (1963년 6월) 배트남 전쟁과 반불교정책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행동으로 분신한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베트남에만 대승불교가 있는데, 베트남 불교는 개개인의 구도에만 전념하지 않고 대승적인 참여의 개념이 강하여, 베트남의 대표적 종교인 불교는 대중적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승려들이 분신자살을 하는 등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기도 한다.

이후 같은 해 대승불교의 교리와 종교적 탄압에 저항하기 위한 스님들의 소신공양이 이어졌고 디엠 정권에 불만을 가졌던 시민, 승려들, 학생들과 심지어는 공무원들까지 가담하여 4개 도시에서 큰 시위를 일으키게 된다. 이후 당시 현장은 말콤 브라운 이란 사진 작가에 의해 촬영되었고 그가 찍은 사진으로 미국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고 베트남 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국내외적인 여론의 압력에 의해 디엠정권의 남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 이후 디엠정권에 매수되었던 베트남의 미대사를 송환하고 새로운 대사를 보내 베트남의 정권의 실체에 대한 조사를 하였고, 군부 쿠테타를 통해 디엠 정권을 몰락시켜 버렸다.

틱쾅둑(Thich Quang Duc)스님의 분신은 명상화 과정에서 아무런 고통의 동요도 없이 이루어진 분신으로 유일하게 기록된 것으로 유명하며 베트남 역사의 가장 큰 상징적 사건이자 현대 민주화 역사에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말콤 브라운의 사진은 당시 함께 낸 기사를 통해 퓰리쳐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 사진은 저 유명한 미국의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 내었던 하드코어 밴드인 'Rage Against The Machine'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의 커버로 씌여 더욱 유명해 지기도 하였다.

처음 이 영상을 본 순간이 정말 잊혀 지지 않는다. 정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영상속에서 차분히 진행되는 소신공양속에서 전혀 외치지 않은 그들의 굳은 신념이 그 어느 목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하였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그들이 가진 신념과 목적에 답을 찾고 싶었고 내 의지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감을 넣어주었다.
그들이 가진 신념과 그 목적에 대한 답은 어쩌면 이 글을 통해서 쉽게 알수 있을 것 같다.

팃낙한 스님이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자신들의 소신공양에 대해 쓴 편지.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의 기독교사회가 가진 도덕적관념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극단적 저항행위도 아닙니다. 소신공양 전에 남긴 유서에서 스님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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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Mooncake'는 멤버들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으며, 이들의 정보는 Allmusic.Com 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고 Amazon.Com 같은 대형 인터넷 싸이트에서도 판매되거나 등록되어 있지 않다.
앨범 또한 2007년 싱글 "More Oxygen, I Said..."을 자체적으로 발표한 후 2008년 올해 정식 데뷔앨범 "Lagrange Points" 을 역시 자체적으로 발매하였다. CD로 된 앨범은 러시아 현지에서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구입 가능 한듯 하며, http://www.last.fm/ 싸이트를 통해서 온라인 음원을 감상하고 구입가능 하다.

혹시 그들의 음악을 듣고 싶다면 사랑 가득한 개인적인 연락 바랍니다....-_-;

2009년 6월 17일 수요일

후회와 낙오적 좌절

나는 대체 왜 사는가...혹은 뭐하고 살았는가...

 

누군가를 잠깐 더 자세히 알게 된 후에 또 다시 큰 미련과 후회가 밀려온다. 자신만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면서 계기와 타고난 능력, 환경의 조합이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한 개인을 만들어 낸다.

그러한 가운데 누군가는 우여곡절의 삶을...누군가는 남들도 잘 이루지 못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며 산다.

 

그 가치의 목적에 함께 도달하지 못한 한 사람은 이러한 미련과 후회를 갖곤 한다. 그것의 반복은 계속되는 우울함과 고착화 되는 우울증 등등....

 

안정적이 못한 나는 차분하게 나의 가치를 만들어 쌓아둔 흔적이 없다. 가끔 그런 가치를 쌓아둔 사람들을 보면 굉장한 부러움와 그러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샘솟곤 한다.

이미 너무 늦었고 내 자신의 한계도 있고, 가장 큰 건 내가 가진 문제를 보조 해줄만한 아무런 체계적 구조도 없다.

 

운명이란 건 이런 것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래의 운명은 더 이상 이런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운명의 방향성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내 자신의 문제와 나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로 인해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 나는 결국 그것을 위해 노력하기 보단 더 나은 세상을 일궈내어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랬다.

 

불만적 분노로 뛰며 소리치고 냉정한 신념 방법을 생각하며 따뜻한 마음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짐하는 이유.

 

이것이 내 마음에서 거리로 나가는 이유이다.